KAI의 ‘수리온’과 S&T중공업의 ‘변속기’ 논란에서 얻어야 할 교훈
- 작성일2018/11/28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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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방산업체가 방산비리에 연루된 것처럼 언론에 기사화되는 내용 중에는 실제 비리도 있지만, 연구개발 과정에서 시행착오 또는 기술부족으로 인해 발생하는 성능 미달이나 생산 단계에서 나타나는 품질 불량 등 ‘결함’이 비리처럼 잘못 인식되어 보도되는 경우도 상당하다.
현 정부 들어 결함이 비리로 부각된 대표적 사례가 ‘수리온’ 헬기이다. 작년 7월 감사원은 수리온 헬기의 각종 결함에 대해 감사한 결과, “비행 안전성에 문제가 있다”고 발표했다. 때마침 문재인 대통령은 “방산비리 척결은 미룰 수 없는 적폐청산 과제”라고 말했고, 수리온은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았다.
수리온 헬기는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2006년 개발에 착수하여 2012년 12월부터 실전 배치한 다목적 헬기다. 배치 이후 기체내부 빗물 유입, 전방유리 파손 등 다양한 결함들이 나타났고 두 차례의 추락사고도 발생하는 등 많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현재는 대부분의 결함이 보완되어 비행 안전성은 거의 문제가 없는 상태다.
■ 최기영 교수, “감사원 잣대로 판단하면 상용화된 선진국 군용기도 불량제품”
통상 무기체계는 연구개발을 통해 시제품이 완성되면 시험평가 과정을 거치는데, 항공기의 경우 시제기의 비행 안전성을 정부가 보증하는 '감항 인증'(Airworthiness Certification)까지 받아야 한다. 이 과정을 통과하면 실제 제품이 생산되어 배치된다. 배치 이후 일정 기간 운영하면서 발생하는 결함들을 보완하면서 무기체계는 완성된다.
인하대 항공우주공학과 최기영 교수는 “감사원이 인증을 거친 제품인 수리온에 왜 결함이 생기냐고 말하지만, 항공기 인증이란 새로운 결함이 발견되면 이를 설계에 반영하는 것 자체를 의미한다”면서 “정부가 지금 같은 잣대로 판단한다면 이미 상용화 된 선진국 군용기들도 불량제품”이라고 지적했다.
작년 10월 장성섭 KAI 부사장(직무대행)은 ‘ADEX 2017’ 현장에서 열린 ‘항공전문가 포럼’에서 “운영 초기 발생하는 일부 결함을 방산비리로 보고 회사 전체를 범죄 집단으로 몰아 참담한 심정”이었다면서 “더 이상 개발자들의 자존감이 무너지지 않도록 회초리를 든 어머니의 마음으로 질책과 더불어 사랑도 주길 부탁한다”고 호소했다.
■ 결함은 무기체계 개발 과정에서 나타나는 현상...시험평가 과정 충분치 않아
수리온 헬기 외에도 K21 보병 전투장갑차, K-11 복합형 소총 등은 실제 운영 중에 중대한 결함이 발생했다. K21 보병 전투장갑차는 2차례의 침수 사고가 발생하면서 무게중심 설계 오류 등 설계 결함이 드러났고, K-11 복합형 소총도 수차례 폭발사고와 품질 결함이 발생해 보급이 중단되고 전면 재설계됐다. 두 사례 모두 실전 테스트가 부족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결함은 새로운 무기체계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나타날 수밖에 없는 현상으로 방산 선진국들도 무수한 결함이 발생했다. 하지만 그들은 결함을 지속적으로 보완하면서 성능을 개량해 오늘날 세계 최고의 명품무기를 만들게 됐다. 반면, 우리 언론은 방산업체가 마치 비리를 저지른 양 보도하는 경향이 있어 선진국들조차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인다.
전문가들은 결함 발생에 대해 “무기체계 개발 후 전장 환경에서 성능을 시험 및 평가하는 과정이 충분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또 “생산 단계에서 나타나는 품질 불량은 사업관리와 품질관리의 전문성 미흡으로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즉 우리는 개발이 완료되면 하루빨리 양산해 일괄 배치하겠다는 조급함이 앞서 시험 평가하는 과정이 미흡한 실정이다.
■ 처음부터 세계 수준의 성능 요구가 결함 발생 원인, 진화적 개발 적용해야
게다가 처음부터 너무 첨단 제품을 요구하여 개발에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드는데다 목표 성능만큼 개발하기도 어렵고, 요행히 개발을 완료하더라도 낙후된 기술로 전락하는 사례가 발생한다. 이와 관련, 무기체계 소요를 결정하는 과정에 관련 정부부처와 과학기술자 등 민간 전문가가 참여하는 ‘개방형 의사결정 체계’가 자리 잡아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김영후 한국방위산업진흥회 부회장은 “결함이 발생하는 근본 원인이 처음부터 세계 최고수준의 작전요구성능(ROC)을 목표로 한 무기체계를 요구하기 때문”이라며 “미국의 ‘저비율 초도생산’(LRIP: Low-Rate Initial Production) 제도처럼 개발 후 초기에는 최소 물량을 생산하고 결함이 발견되면 다음 단계 설계와 제작에 반영해 생산량을 조금씩 늘리며 무기 품질을 향상시키는 ‘진화적 개발’을 적용하자”고 주장한다.
2018-11-28
뉴스투데이
이스라엘의 경우 ‘Iron Dome’ 이라 불리는 전천후 이동식 방공시스템을 개발하면서 미국과 유사한 방식을 적용했다. 2007년 12월부터 개발을 시작하여 최종 목표성능의 약 70% 수준만 충족한 채 2011년 실전 배치했고, 이후 2년 동안 성능을 계속 높여갔으며, 최종적으로 미사일 요격율을 95%까지 향상시켰다.
■ 목표 성능 충족하지 못하면 실전 배치 어려워...K2 전차 파워팩이 대표적 사례
하지만, 우리는 무기체계 개발 시 최초 목표한 성능을 충족하지 못하면 실전 배치조차 할 수 없다. 또한 개발된 무기를 처음부터 대량 생산하다보니 ‘결함’이 발견되면 실전 배치는 중단되고, 사업은 지연될 수밖에 없다. K2 전차의 파워팩 개발이 대표적 사례이다.
K-2 전차 파워팩은 최초 국산화가 어렵다는 국방과학연구소(ADD)의 의견이 있었지만 업체가 주장해 국내 개발을 추진했다. 시험평가 도중 결함들이 속출해 1차 양산분(100대)은 독일산 파워팩을 장착했고, 2차 양산분은 국내산 파워팩을 장착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아직까지 파워팩을 구성하는 변속기의 결함이 해결되지 않아 생산 일정에 차질을 빚고 있다.
변속기 개발업체인 S&T중공업은 “평가기준이 너무 가혹하다”는 주장을 편다. 외국산 변속기는 320시간(9600km) 주행하는 내구도 시험 과정에서 초기 단계 정비를 허용하는데 국내 개발한 변속기는 일체 허용하지 않아 7110km에서 볼트 하나 파손된 것으로 인해 내구도 시험에서 불합격했다고 한다.
파워팩은 개발과 시험 과정에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업체의 개발이 상당한 성과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이 분야 세계 최고인 독일이 13년 걸려 개발한 것을 5년 만에 개발하라고 요구한 상태에서 나온 결과이기 때문이다. 아직 완전하지는 않지만 진화적 개발 개념을 적용한다면 장차 독일 수준에 버금가는 국산 파워팩을 가질 수도 있다.
■ 개발에 실패하면 업체 잘못으로 낙인찍어 페널티...방산비리 누명 쓰기도
이와 같이 첨단기술 개발은 무수히 도전했다가 실패하면서 ‘수정·보완’하는 과정을 반복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개발에 실패하면 재도전의 기회를 주기보다 이런 저런 이유를 들어 업체가 잘못한 것으로 낙인찍어 페널티를 물린다. 게다가 결함이 자주 발생하면 방산비리 누명까지 뒤집어쓰기도 한다.
방위산업 분야 전문가인 정의당 김종대 의원은 “업체가 주도한 공군 장거리 레이더 사업과 소부대 무전기 사업의 경우 시험평가 성능이 90%를 상회함에도 군 당국의 무지로 사업이 취소됐다”고 주장했다. 반면 “해외에서 직도입한 해군의 하푼 미사일은 10발 중 7발밖에 명중하지 않았어도 아무런 문제 제기가 없었다”면서 방위사업제도의 모순을 지적했다.
심상렬 광운대 방위사업연구소장은 “국가가 안보를 위해 돈을 들여서라도 육성해야 하는 분야가 방위산업”이라면서 “유사시 즉각적인 대응이 가능하려면 외국에서 구매하는 것보다 비용이 더 들더라도 꼭 필요한 기술과 무기는 자체 개발하고 생산할 능력을 구비해야 한다”고 말한다. 더구나 그 비용은 국내 업체가 가져가는 것이니 국부가 해외로 유출되는 것도 아니다.
■ 업체의 입장에서 좀 더 따뜻한 시각으로 이해하고 힘을 모아주는 노력 필요
무기체계 개발에는 많은 사람과 다양한 업체들이 관여되어 있고 업체는 이익을 내야만 생존이 가능하다. 따라서 원인이 어디에 있던 업체가 추진한 개발 과정에서 문제를 찾자면 여러 가지가 나타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문제들을 업체의 입장에서 좀 더 따뜻한 시각으로 이해해주고 성공할 수 있도록 정부가 힘을 모아줘야 방위산업이 발전할 수 있다는 지적이 많다.
지금처럼 문제가 발생하면 서로 책임을 떠넘기며 상대의 잘못을 찾아 소송을 벌이는 모습은 정부도 업체도 모두 패자로 만든다. 현행 제도와 법규는 방산 선진국인 외국 업체보다는 국내 업체에게 불리하고 엄격하다. 그 밑바탕에는 정부와 업체 간 상호 불신과 책임 회피가 깔려 있어 ‘방위산업 육성’이란 용어가 공허한 느낌마저 든다.
이제 더 이상 실체도 불명확한 방산비리를 근절한다면서 개발 및 생산 과정의 결함까지 방산비리로 확산시키는 행위는 사라져야 한다. 그리고 정부는 물론 언론도 나서서 방산업체의 힘겨운 노력에 힘을 보태야 한다. 그동안 묵묵히 소임을 다하면서도 비리 프레임에 갇혀 사기가 떨어진 방위산업 종사자들의 노고가 제대로 평가받는 시간이 돌아오길 기대한다.
김한경 방산/사이버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