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방위산업 발전 위해 민간 주도의 군 요구성능 개발 필요
- 작성일2020/02/03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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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2020.02.03
올해 세계 10위의 국방 예산(50조원)과 4조원 규모의 국방 연구·개발(R&D)에 비해 한국 방위산업은 초라하다. 천문학적 국방비를 쓰고도 방산업계 영업이익률은 3.4%(2016년 기준)다. 제조업계 평균(6.0%)의 절반 수준이다. 2013∼2015년 30억 달러를 넘겼던 방산 수출도 크게 줄었다. 세계 100대 방산업체 중 국내 방산업체가 7개지만 50대엔 1개뿐이다. 정부와 업체가 노력을 한다지만 규제의 모순과 비리 아닌 비리에 얼룩진 방산의 현재 모습으론 결코 활성화될 수 없는 현실이다. 정부 주도의 방산이 한계에 왔다는 지적도 있다. 방산은 훌륭한 무기를 만들어 안보에 기여하는 게 기본이다. 그러나 이젠 세계로 수출하고 일자리 창출에 기여할 필요가 있다.
방산이 안보와 일자리 기여하려면
턱없는 무기성능 요구 현실화해야
우리 방위산업이 위기에 놓인 까닭은 수십 년 전 만들어진 제도가 발목을 잡고 있어서다. 먼저 군 당국이 무기나 군 장비를 계획할 때 세계 최고 수준의 군 요구성능(ROC)을 정한 뒤 짧은 기간에 무리하게 만들라고 재촉하기 일쑤다. 국내 기술 한계로 ROC를 충족하지 못할 때는 아무도 이를 수정하려고 나서지 않는다. 혹시라도 ROC를 수정했다간 방산업체를 봐줬다며 감사원·검찰 조사를 받는 게 두려워서다. 2017년 감사원의 방위사업청 직원에 대한 징계 요구는 31명에 달했다. 복지부동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개발 기간이 길고 무기체계 발전 추세를 반영할 수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무기 발주에서 획득까지 15년이나 걸린다. 이 과정에서 무기 개발 리스크는 높아지고 비용도 증가한다. 업체의 자발적 투자를 유도하는 것은 더욱 어렵다. 이뿐만 아니다. 무기체계는 개발 실패를 허용하지 않는다. 100개 사업 중 1개만 실패해도 조사받는다. 징계는 기본이다. 100개를 투자해 2개를 건지는 실리콘밸리와는 환경이 전혀 다르다. 2009∼2010년 연거푸 2번 발사에 실패한 나로호 같은 사건이 무기 개발이나 방위산업에서 벌어졌다면 해당 사업 개발팀은 벌써 해체됐을 것이다. 개발자와 업체에 책임을 묻는 건 물론이다. 보안이 과도한 규제로 작용하는 것도 큰 문제다.
이런 방산 여건을 고려해 일본 도요타자동차의 철학처럼 제도와 시스템을 진화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먼저, 세계 시장에 팔릴 수 있는 ROC를 민간 주도로 설정해 개발할 필요가 있다. 정부가 개발비와 기술을 지원해 업체가 만든 무기를 구매하는 방식이다. 무기의 ROC를 미국처럼 최소 수준을 충족하면 생산하고 최종적으로 목표 수준에 맞춰 개량하는 것이다.
둘째, 국내 계약은 해외처럼 장기 확정계약을 통해 방산업체가 안정적으로 가동하도록 보장해줘야 한다. 그래야 원가 부정과 관리 부담을 근원적으로 없애고, 이윤 창출이 가능하다. 셋째, 방산업체들이 국내 시장에서 제 살 뜯어 먹기식 경쟁이 아니라 세계적 전문기업이 되도록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꼭 필요한 분야에 대한 국제 경쟁력이 확보될 때까지 전문화·계열화를 유지하는 것은 어떤가. 넷째, 가격 위주로 지나치게 업체의 출혈 경쟁을 유도하는 관행이나 일반사업의 3배에 달하는 과도한 지체부담금은 개선돼야 한다. 성실 여부에 따라 지체부담금을 유예하는 발상의 전환도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대통령이 주관하는 국방산업진흥회의를 프랑스나 러시아처럼 정례화하자.
한국은 4대 열강과 핵으로 무장한 북한으로 둘러싸여 있다. 최근 전쟁 방식은 로봇과 무인화, 인공지능(AI)과 사물인터넷 등으로 혁신적으로 바뀌고 있다. 한국이 생존하려면 세계 수준의 국방과학기술과 방산 능력을 갖춰야 한다. 10% 개선은 어렵지만, 변화·혁신으로 30∼50% 도약은 오히려 쉽다고 한다. 소비하는 국방이 아니라 투자하는 국방으로 가야 한다.
- 전용우 법무법인 화우 고문·방산업체CEO포럼 회장 -
https://news.joins.com/article/236960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