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손님이 2월2일···추석까지 예약 0" 피마르는 여행업계
- 작성일2020/03/25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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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2020.03.24
“마지막 손님이 2월 2일 입국했네요. 그리고 없어요. 한 건도요. 예약은 다 취소됐고, 남은 예약이 추석에 있네요. 9월 30일 출발 추석 연휴 손님은 아직 취소를 안 했네요. 직원 5명은 출근 안 하고, 대표인 나만 출근해요. 문체부 특별 융자는 신청 안 했어요. 어차피 빚이잖아요. 최소 6개월은 수입이 없을 텐데 빚을 왜 져요? 임대료는 어떻게든 버텨볼라고요. 정 안 되면 보증금이 있으니까. 다른 여행사도 문체부 융자는 거의 신청 안 했다고 들었어요. 조건이 까다로워서. 대신 서울시가 보증 서는 은행 융자는 여럿 신청했다는 것 같아요.”
일본 전문 M여행사 S(54) 대표의 목소리는 의외로 담담했다. “20년 넘게 여행사 밥을 먹으면서 이런 일은 처음”이라면서도 “설부터 추석까지 매출 0원”이라는 막막한 현실을 남의 일처럼 말했다. “어쩔 수 없잖아요.” 일본 불매운동의 영향으로 지난해 하반기 매출이 전년 같은 기간의 20% 아래로 추락했어도 희망을 말했던 그다. 지금은 아니다. 여행이 금지된 시대, 여행사에 희망은 사치가 돼 버렸다.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은 여행업계는 말 그대로 ‘올 스톱’ 상태다. ‘3월 매출 0원, 이후 예약 0건’의 현실은 1만8532개 국내 여행사 대부분의 공통 사례다. 중앙일보는 코로나19 피해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대형 패키지 여행사부터 직원 10명 이하의 영세 여행사까지 10곳이 넘는 여행사를 접촉했고, 모두 “매출이 전혀 없다”는 답을 들었다.
매출 0원 시대. 여행사는 지출이라도 줄여야 한다. 여행사 지출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임대료와 인건비. 임대료는 어쩔 수 없으니 인건비를 줄여야 한다. 해고는 일단 자제하는 분위기다. 고용노동부의 고용유지지원금을 받으려면 고용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23일 현재 고용노동부에 고용유지지원금을 신청한 1만7866개 업체의 13%(2328개 업체)가 여행사다.
현재 여행사의 근무 형태는 두 가지다. 주3일 근무제 또는 무급 휴직. 주3일 근무제도 재택근무가 원칙이다. 차례를 정해 최소 인원만 출근한다. 사무실에 나와도 어차피 일이 없다. 여행사가 주3일 근무제를 시행한다면 고용유지지원금을 받는다는 얘기다. 영세 업체 대부분은 정부 지원금도 포기하고 무급 휴직을 선택한다.
가장 위태로운 건 여행사도, 여행사 직원도 아니다. 여행 가이드다. 여행 가이드는 프리랜서 신분이어서 여행사에 고용 유지 의무가 없다. 여행사에 일이 없으니 가이드도 일이 없다. 따라서 코로나19 시대 가이드는 곧 실업자를 의미한다. 여행업계에는 프리랜서가 유난히 많다. 전체 숫자가 얼마인지도 모른다. 인바운드(외국인의 국내여행) 여행 가이드 3228명이 속한 ㈔한국관광통역안내사협회가 지난달 생계 대책 마련을 호소하는 담화문을 발표한 바 있다. 물론 정부 답변은 없었다.
지난주부터 불길한 소문이 들려온다. 주3일 근무제를 시행 중인 여행사 중 몇몇이 주3일 근무제 해제 검토에 들어갔다고 한다. 왜 이게 불길한 징조일까. 고용유지지원금을 받으려면 여행사가 먼저 임금을 지급해야 한다. 그러면 정부가 임금의 90%를 여행사에 준다. 나머지 10%는 여행사가 떠안는 구조인데, 그 10%도 이젠 버겁다는 얘기다. 매출 0원 시대이어서 가능한 계산이다.
2월 1일부터 3월 23일까지 국내 여행사 23곳이 휴업했고, 95곳이 폐업을 신고했다. 솔직히 휴·폐업 통계는 의미 없다. 사실상 모든 여행사가 휴업 상태이기 때문이다.
▷2월 17일 서울신용보증재단에 상담 신청 ▷3월 4일 보증재단과 상담 ▷3월 5일 농협에 융자 1억원 신청 ▷3월 9일 은행 관계자 사무실 실사 ▷3월 11일 신용보증재단으로 이관 통보받음 ▷3월 19일 문체부, 정부 지원 느리다는 지적에 후속책 발표 ▷3월 23일 신용보증재단 전산 접수 완료, 검토 진행 예정 통보
인바운드 전문 T여행사의 문체부 특별융자 일정표다. 문체부는 2월 17일부터 관광업계를 대상으로 무담보 신용보증 융자 정책을 시행 중이다. 업체당 최대 2억원까지 지원이 가능하며 전체 예산은 한차례 증액을 거쳐 1000억원을 마련했다.
T사는 상담 신청을 한 지 35일이 지났는데도 지원금을 못 받고 있다. 아니, 본격적인 검토조차 시작되지 않았다. 이 점에서 T사의 사례는 지극히 보편적이다. 문체부 융자 절차는 매우 느리다. 여행사들이 문체부 융자를 외면하는 첫째 이유다.
문체부 특별융자는 3월 13일 기준 795개 업체가 신청했고 158개 업체가 선정됐다. 여행사가 금융 지원을 받으려면 5대 1이 넘는 경쟁률을 통과해야 한다. 여행사들이 문체부 융자를 외면하는 둘째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국내 여행사의 약 90%가 직원 10명 이내의 영세 업체다. 영세 업체 대부분이 신용 상태가 좋지 않다. 한국여행업협회 서대훈 부장이 정곡을 찔렀다. “메르스 사태와 중국의 사드 보복 때 빚을 낸 여행사가 신용보증으로 추가 대출을 받는 건 어려운 일이다.”
3월 13일 현재 158개 업체에 모두 89억원이 공급됐다. 업체 한 곳당 약 5300만원꼴이다. T사의 경우 평균 지원금의 두 배 가까운 액수를 신청했다. 심사를 통과해도 신청금 전액을 받을지는 미지수다. 문체부(최대 2억원)와 서울시(최대 7000만원)의 집행기관인 서울신용보증재단에 의하면 최다 액수를 빌린 여행사는 거의 없다.
문체부는 19일 개선책을 발표했다. ‘서울신용보증재단 인력 보강, 농협 전 지점 신청 접수’가 주요 내용이다. 이로써 대출 절차가 2주 안에 마무리되도록 개선하겠단다. 개선책에도 허점이 보인다. 당장 대출 조건을 못 맞추는 여행사에 대한 대책이 빠져 있다. 여행업계는 차라리 직접 지원을 하라고 아우성이다. 여행사 매출 0원 예약 0건의 시대, 몇 푼 안 되는 직접 지원도 실은 언 발에 오줌 누기일 터이다.
- 손민호·최승표·백종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