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국방기술 혁신의 열쇠 '공동?융합 R&D'
- 작성일2018/06/18 17:58
- 조회 419
2018-06-17
전자신문
1970년대 우리나라 무기 개발은 온전히 미국에 의존했다. 우리나라는 재래식 무기 개발을 위해 미국 라이선스를 구매했다. 한국 국방 규격은 미국 국방 규격(MIL-spec)을 그대로 번역해 제정했다. 미국 규격에 따라 우리나라 무기를 생산한 것이다. 이 방법으로 군수품을 제조하는 경우 미국에서 구할 수 있는 원료를 기반으로 제조해야 한다. 이에 따라서 수류탄의 폭발 지연 시간 조절을 위해 사용되는 간단한 점토도 다른 나라 원료를 사용하면서 성능이 저하되는 등 많은 문제에 직면했다.
그럼에도 선진국 기술 의존도가 높은 이유는 무기 개발에 긴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국방 무기는 일반 소비 제품과 다르게 적용 분야 특성상 사람에게 위험한 제품이 많다. 이 때문에 제품 개발 단계가 매우 복잡하고, 저장 환경 시험을 거쳐야 한다. 실제 군에 적용하려면 길게는 10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다. 더욱이 개발 자체가 군사기밀인 경우가 많아 진행 과정 공개가 불가능하다. 2000년대 들어 국내 기술로 개발된 다양한 무기 체계가 선보여 실전 배치되고 있지만 여전히 선진국 기초 기술에 기반을 둔 것임에는 부인하기 어렵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국방 분야 연구개발(R&D)의 세계 추세를 눈여겨봐야 한다. 선진국 국방 R&D는 대부분 민간 산업체, 대학교, 연구소와 함께 진행된다. 미국은 국가연구비 예산의 절반을 국방 분야에 사용한다.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미래 지향 국가 프로젝트는 국방부 산하 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PA)이 기획하고 집행한다. DARPA는 산·학·연 연계 혁신형 프로젝트를 추진해 민간 분야로 기술을 확산했고, 오늘날 혁신 연구 요람으로 인정받고 있다. DARPA는 초기에 군의 수요에 맞는 기술 개발에 중점을 뒀다. 이후 기초 과학 중심으로 과제를 기획했다. 또 기업과 대학의 야심에 찬 R&D를 지원했다. 연구 결과는 민간 분야까지 확산 적용했다. 이런 노력으로 1970년대 인터넷을 포함한 개인 컴퓨터 시대를 이룩했고, 2000년대 들어와 자율주행과 로봇 사업에서 뛰어난 성과를 거두고 있다.
다가오는 4차 산업혁명 시대 국방 혁신의 핵심 기술에서 '복합 소재'를 빼놓을 수 없다. '꿈의 신소재'라 불리는 그래핀은 머리카락 굵기 10만분의 1에 불과하지만 강철보다 200배나 강하다. 이것으로 반도체 소자를 만들면 무기의 초경량화가 가능하다. 또 질화붕소나노튜브(BNNT)로 방호복을 만들면 한 장의 얇은 직물 형태 섬유로도 방사선을 막을 수 있다. 이렇듯 국방 기술 혁신은 복합 소재에서 시작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 북미정상회담이 개최되고 북한의 핵무기 폐기가 언급되는 상황에서 복합 소재 사용이 줄어드는 것 아니냐는 견해가 있다. 복합 소재는 전략 물자이면서 경량 소재이기 때문에 일상생활에서도 다양하게 활용된다. 현재 초경량 자전거, 낚싯대 등 스포츠용품부터 전기자동차 내장재·구조재로 쓰인다. 일본은 건물의 내진 보강재로도 사용한다. 웨어러블 기기, 스마트 로봇, 항공·우주 분야 등 복합 소재 활용 범위는 더욱 넓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우리나라는 국방 R&D 분야의 산·학·연 연계가 미흡하다. 공동·융합 연구의 필요성에 대한 지적이 많다. 융합을 통한 노력 없이는 창의성이 뛰어난 기술 개발에 요원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정부도 이 같은 사실을 주지하고 민간과 군 협력을 통한 R&D 사업 촉진을 위해 다각도로 노력하고 있다. 다가오는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소재 개발은 국방 분야뿐만 아니라 미래 사회 변화를 선도할 핵심 기술이다. 이에 따라서 복합 소재 연구는 미래 첨단 소재로서의 중요성이 강조돼야 한다. 앞으로도 지원과 투자가 지속해서 이뤄져야 한다.
이성호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전북분원 복합소재기술연구소 탄소융합소재연구센터 책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