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척 구축함 필요하다" 한국 해군 미뤄선 안 되는 이유
- 작성일2018/11/19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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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18
중앙일보
“신에게는 12척의 배가 남아있사옵니다(今臣戰船 尙有十二).”
이순신 제독은 1597년 9월 16일 명량 해전을 앞두고 선조에게 보내는 장계에서 이렇게 썼다. 원균이 칠전량 해전에서 크게 패한 뒤 사실상 껍데기만 남은 조선 수군을 없애고 육군에 합세하라는 선조의 명령에 대해 항변하면서다.
나라에 대한 충성과 걱정, 죽을 각오로 싸우겠다는 다짐이 어우러진 역대의 명언을 오늘 한국 해군에게 빗대면 이렇게 쓸 수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 해군에게는 18척의 구축함이 필요합니다”라고.
바다는 식량ㆍ에너지ㆍ무역으로 국부를 일굴 수 있는 터전이다. 한국은 바다가 없으면 살 수 없는 반도에 있는 나라다. 게다가 대외교역에 많이 기대는 경제구조를 갖고 있다. 해상교통로가 15일 넘게 차단되면 수출입이 완전히 끊기고 생필품이 부족해진다. 특히 중동지역에서 석유를 들여오는 해상교통로는 생명선과 다름없다. 해군은 북한만을 상대하는 연안 해군을 넘어서 대양 해군으로 나가려 하는 이유다.
그런데 해군의 대양 해군 계획에 차질이 빚어질지도 모른다. 지난 7일 국방부에서 열린 제115회 방위사업추진위원회(방추위)에서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 사업의 사업추진안이 보류됐다. 국방부 안팎에선 해군 출신인 전임 송영무 국방부 장관이 짜놓은 전력 사업을 공군 출신인 정경두 장관이 손을 대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하지만 복수의 정부 소식통에 따르면 KDDX개발에 들어가는 일부 기술의 작전요구성능(ROC)이 너무 높아 개발 예산이나 시간이 많이 들어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면서 다시 검토하기로 한 것이다. 다음 방추위에서 KDDX사업추진안은 재논의될 예정이지만 해군 입장에선 속이 타들어 간다.
KDDX가 대양 해군 계획에서 핵심 요소이기 때문이다. KDDX 건함이 늦어지면 대양 해군 계획의 일정도 아울러 뒤로 밀리게 된다. 김진형 전 합참 전략부장(예비역 해군 소장)은 “해군 함정은 기획부터 확보까지 12~15년 걸리는 사업”이라며 “국가의 미래를 고려해 거시적 안목으로 수립하는 게 건함 계획”이라고 말했다.
KDDX는 어떤 배이길래 해군이 간절히 원하는 것일까. 왜 대양 해군이 필요할까. 해군이 꿈꾸는 대양 해군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
♤ 한국형 미니 이지스함 KDDX
KDDX를 쉽게 풀자면 한국형 미니 이지스함이다. 해군이 현재 운용 중인 세종대왕급 이지스 구축함(7600t급)보다 작은 6000t급 구축함이다.
“이지스 구축함은 배값만 1조 2000억원가량이다. 여기에 무장 비용과 운용 비용을 더하면 그 금액이 훨씬 더 뛴다. 해군으로선 성능은 이지스 구축함인데, 가격과 운용 비용이 싼 KDDX가 필요할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함대함ㆍ함대지ㆍ함대공 미사일과 수직발사대를 모두 국산화했기 때문에 이제 KDDX를 우리 손으로 건조할 역량이 충분하다.”
김진형 전 부장의 설명이다.
아직 구상에만 머문 단계이기 때문에 구체적인 성능이나 무장이 확정되진 않았다. 다만 다기능 위상배열 레이더(AESA)와 탄도미사일도 요격할 수 있는 장거리 함대공 미사일을 갖출 것은 확실하다. 관련 기술이 상당히 쌓여있기 때문에 국산화를 할 수 있다는 게 해군의 설명이다.
이지스 구축함의 레이더인 AN/SPY-1처럼 AESA는 4면에 고정하는 형식이다. 면배열 레이더는 끊김 없이 360도 전방위를 탐지할 수 있다. 회전식 레이더는 안테나가 원래 위치로 돌아오기까지 시간 동안 레이더상에서 적을 놓친다. 장거리 함대공 미사일은 국산 장거리 지대공미사일인 L-SAM 해상형이 채택될 가능성이 있다. 만일 L-SAM 해상형이 어렵다면SM-3을 무장할 수도 있다.
KDDX의 가장 큰 특징은 스텔스성이다. 우선 통합형 마스트를 단다. 통합형 마스트는 함교 위에 있는 각종 레이더 체계를 모듈화한 뒤 전자파 차폐 구조물 안에 집어넣는 체계다. 통합형 마스트는 마치 감시탑처럼 생겼다. 함교 위에 감시탑을 올려놓은 모습이라고 보면 된다.
통합형 마스트는 전투함의 레이더 반사 면적 지수(RCS)를 크게 낮춘다. 미 해군의 줌월트급 구축함(1만4000t급)은 레이더 화면에 200t급의 작은 배처럼 나타난다. 통합형 마스트를 비롯한 각종 스텔스 장비 덕분이다. 200t급이면 한국 해군의 고속정인 참수리급(150t)보다 조금 더 큰 수준이다. 현재 국산 통합형 마스트 개발 연구가 진행 중이다.
국방과학연구소는 수상함에 바르는 적외선 차폐도료도 개발하고 있다. 최근 대함미사일은 적외선 시커(추적장치)를 갖추고 있다. 그래서 적외선 차폐도료를 바르면 적의 대함미사일을 따돌릴 수 있다.
KDDX의 레이더는 적을 탐지할 때 출력을 최소한으로 줄이거나, 레이더의 주파수와 파형을 불규칙으로 변화하는 저탐지(LPI) 기술이 적용된다. 이렇게 하면 적이 레이더 전송신호를 식별하는 것을 방해해 아군의 위치파악을 어렵게 만든다.
♤ 18척의 구축함이 필요한 이유
국회 국방위원장인 더불어민주당 안규백 의원은 최근 ‘해양안보환경과 해군전력발전방향’이란 국감 정책자료집을 냈다. 안 의원은 한국 해군의 현실에 대해 이렇게 진단했다.
“주변국의 해양 위협에 대해선 북한위협 대비에 치중돼 있어, 주변국 대비 전략은 수세적임. 해역함대에 의한 방어는 가능하나, 공세적 작전수행 능력은 부족.”
“해적ㆍ해양테러 등 국제해양안보위협에 대해선 대응 가능한 DDH-II급(KD-2) 이상의 함정 운용 여유 부족.”
그러면서 차기 이지스 구축함 3척과 KDDX 6척을 가급적 빨리 확보하다는 게 안규백 위원장의 결론이다.
한국 해군이 보유한 광개토대왕급(KD-1) 3척은 북한의 해군을 상대하고 있으며, 세종대왕급 이지스 구축함(KD-3)은 북한의 미사일 도발에 대응하기 위해 늘 대기한다. 그래서 충무공이순신급 구축함(KD-2) 6척이 가장 바쁘다. 6척밖에 없는 데도 청해 부대에 1척을 보내고, 해사 생도의 순항훈련 때면 또 1척을 빼야 한다. 다행히 지난 16일 순항훈련에 대신 투입할 훈련함인 한산도함을 진수했지만, 아직도 멀었다.
한국이 일본과 중국을 모두 해상에서 압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천문학적인 예산을 마련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일본과 중국을 견제할 정도의 전력을 갖추는 게 차선책이다. 그래서 나온 게 18척이다. 18척을 보유하면 출동ㆍ대기ㆍ수리 3직제를 운용하는 해군의 시스템에 따라 유사시 최소 6척의 1개 기동전단을 즉시 투입할 수 있게 된다. 이 정도 전력이면 8척인 일본의 1개 호위대군과 견줄 수 있다.
해군은 2020년대 후반까지 2개 기동전단을 완성한 데 이어 2030년대 중반까지 3개 기동전단을 보유하려고 한다. 이때쯤이면 광개토대왕급 3척은 물러난다. 충무공이순신급 구축함 6척, 세종대왕급 이지스 구축함 3척, 차기 이지스 구축함 3척, KDDX 6척 등 모두 18척의 3개 기동전단이 한국의 해양 이익을 수호할 것이다. 또 F-35B를 탑재할 수 있는 상륙함 1척을 가지려 한다. 3개 기동전단을 하나로 묶어 기동함대로 편성할 수 있다.
해군은 지난달 19일 해군본부에서 열린 국회 국방위 국정감사에서 업무보고에서 “3개의 기동전대로 편성되는 기동함대를 창설하고 항공기 전력 증강, 임무 확대에 따라 항공사령부 창설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 경우 현재의 해군 작전사령부를 두 개로 쪼개야 한다. 제1작전사는 북한위협 대응을 주도하고, 제2작전사는 잠재적ㆍ 비군사적 위협 대응을 주도하는 임무를 각각 맡게 된다. 기동함대는 2작전사 아래에 들어간다.
이순신 제독의 장계는 “비록 전선은 적으나 신의 몸이 살아있는 한 적은 감히 이 바다를 넘보지 못할 것이옵니다(戰船雖寡 微臣不死 則賊不敢侮矣)”라고 끝난다. 한국 해군의 심정은 이렇지 않을까.
“비록 구축함의 수는 적으나 18척의 구축함이 있는 한 적은 감히 이 바다를 넘보지 못할 것이옵니다.”
이철재 기자
https://news.joins.com/article/231336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