印尼 속썩이지만 포기할 수 없는 한국형 전투기 사업
- 작성일2020/02/10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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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시스]
2020.02.08
한국형 전투기(Korea Fighter Experimental, KF-X) 공동 개발국인 인도네시아가 예산 부족을 이유로 사업 분담금 지급을 미루고 있다.
그 여파로 한국형 차세대 전투기 사업의 전망이 어두워졌다는 지적이 나오지만 우리 정부로서는 이제 와서 사업을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사업 중요도를 감안했을 때 더 이상의 궤도 수정은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인도네시아의 몽니로 위기에 처한 한국형 전투기 개발 사업은 20년 가까이 된 숙원 사업이다. 2001년 3월 당시 공군사관학교 졸업식에서 김대중 대통령이 '국산 전투기 개발계획'을 언급한 게 사업의 시작이다.
보라매 사업으로도 불리는 이 사업의 목표는 우리 공군의 노후 기종인 F-4, F-5를 대체할 새 전투기를 직접 개발하는 것이다.
하이-미디엄-로우(High-Medium-Low) 전투기 운용개념에 근거해 미디엄급 전투기를 개발하는 게 군 당국의 목표다. 장거리 중무장 하이급 전투기는 최고 성능 전투기로 구매하기로 방침이 정해졌고, 그 결과 미국으로부터 F-35A 스텔스 전투기가 도입됐다. 한국형 전투기는 미디엄급을 채우게 된다.
군은 2015년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을 한국형 전투기 개발업체로 선정했다. 초기 개발비는 약 8조8000억원, 양산비는 9조6000억원으로 책정됐다. 운용 유지 비용까지 포함하면 전체 사업 규모는 30조원에 육박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내년에 시험용 전투기(시제기) 1호기가 제작되며 2022년 첫 비행이 실시될 예정이다. 새 전투기는 길이 16.9m, 높이 4.7m, 폭 11.2m로 F-35A 스텔스 전투기보다 다소 크다. 쌍발 엔진(F414-GE-400K)을 탑재하며 최대 추력은 4만4000lb(파운드), 최대 속력은 시속 2200㎞(마하 1.8)이다. 비행 속력은 마하 1.6(음속의 1.6배)인 F-35A보다 다소 빠르다. 스텔스 기능이 없는 점이 흠이다.
우리 정부가 60%, 인도네시아가 20%, 한국항공우주산업이 20%의 개발비를 분담할 예정인데 인도네시아가 비협조적으로 나오는 게 골칫거리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한국형 전투기 개발비 8조5000억원 중 20%에 해당하는 1조7000억원을 부담하기로 했지만 2272억원만 내고 나머지를 내지 않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더 많은 핵심 기술을 이전해달라며 재협상을 요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과정에서 인도네시아는 러시아·프랑스 등과 전투기 도입 협상을 벌이는 등 우리 정부를 애타게 하고 있다. 프라보워 수비안토 인도네시아 국방부 장관은 최근 러시아와 프랑스를 방문해 수호이 Su-35 전투기, 라팔 전투기 등을 구매할 의향을 내비쳤다. 러시아, 프랑스와의 거래를 지렛대 삼아 한국형 전투기 기술 이전과 분담금 할인을 이끌어내려는 인도네시아의 노림수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최악의 경우 인도네시아가 사업에서 이탈하면 인도네시아 현지에서 제작하기로 예정된 새 전투기 50대가 생산 계획에서 빠진다. 계획한 전투기 생산 대수가 줄어들면 전투기 대당 가격이 올라가 수출 등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 때문에 정경두 국방장관이 지난해 12월 인도네시아를 직접 방문해 프라보워 장관을 설득했다. 정 장관은 한국형 전투기 공동 개발 사업의 인도네시아 총괄 책임자인 마흐푸드 엠데 장관와 만나 사업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처럼 인도네시아의 비협조로 논란이 커지자 한국형 전투기 사업에 대한 비관론이 다시금 고개를 들고 있다.
인도네시아처럼 전투기 개발 경험이 없는 국가와 합작하는 것이 애초부터 의미가 없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보잉(Boeing), 록히드 마틴(Lockheed Martin), EADS(European Aerospace and Defense System) 등 선진 항공업체와의 합작이 필요했는데 인도네시아를 사업 파트너로 끌어들인 것 자체가 실책이란 것이다.
대당 가격도 걱정거리다. 인도네시아의 이탈을 감안하지 않더라도 치솟는 개발비 탓에 대당 가격이 F-35A(약 900억원)보다 비싸질 것이란 우려가 있다. 스텔스 기능을 갖춘 5세대 전투기인 F-35A보다 성능이 떨어지는 4~4.5세대 전투기인 한국형 전투기가 더 비쌀 경우 해외 수출길이 막힐 수 있다.
한국형 전투기 가격이 오를 것이란 전망이 나오자 차라리 그 돈으로 F-35A를 100대 정도를 구입하는 게 낫다는 주장이 제기될 정도다.
아울러 한국형 전투기의 수출 전망이 어둡다는 분석은 그간 거듭 나왔었다. 2020~2030년 전 세계 미디엄급 전투기의 소요는 1770여대 수준이며 이 중 정치적 문제로 판매가 불가능한 나라의 소요 635대와 전투기 독자개발을 추진하고 있는 나라의 소요 400대를 제외하면 소요 발생은 565대에 불과하다는 것이었다.
이런 협소한 시장을 두고 라팔, 타이푼, F-35, F-16, F-18, 그리펜 등과 경쟁해야 하기 때문에 한국형 전투기의 수출이 어렵다는 지적이 제기돼왔다. 게다가 한국형 전투기에 들어간 미국산 장비로 인한 미국 정부의 수출 허가(EL) 문제가 수출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이 같은 비판이 여전하지만 이제는 돌이키기는 어려운 상황에 처했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당장 내년에 시제기가 나오는 마당에 사업을 엎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미디엄급 전투기를 채우는 게 급선무다. 한국형 전투기는 이미 노후화된 미디엄급, 로우급 노후 전투기를 대체해야 한다.
현재 우리 공군 전투기는 400여대다. 전략적 타격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하이(F-35A, F-15K)급 전투기, 다양한 작전에 투입 가능한 미디엄(KF-16, F-16, F-4)급 전투기, 지상군 지원에 주로 쓰이는 로우(KF-5, F-5, FA-50)급 전투기가 있다.
이 중 미디엄급 F-4 팬텀과 로우급 F-5 제공호는 각각 1960년대와 1980년대부터 운용돼 순차적으로 퇴역이 이뤄지고 있다. 한국형 전투기가 이를 대체해야만 우리 공군의 공중 전력이 유지될 수 있다.
군 관계자는 "전시에는 소티(Sortie, 항공기 1대가 임무 수행을 위해 출격한 횟수)가 필요하다"며 "많은 소티를 하루에 운영해야 우리에게 위협이 되는 북한의 이동식발사대(TEL)를 부수고, 지상군 이동을 차단하고, 수도권을 위협하는 장사정포를 무력화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전 세계적인 무인기 발전 추세를 따르기 위해서도 한국형 전투기는 필요하다.
무인기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향후 공중전 양상이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유인 전투기를 축으로 삼아 다수의 무인기들이 편대 비행하며 작전을 수행하는 형태가 될 가능성이 크다. 미 공군이 시험비행을 시작한 XQ-58A 발키리가 대표적인 사례다.
우리 군이 국산 전투기를 보유하지 못하면 앞으로는 해당 전투기는 물론 이에 딸린 무인기들, 그리고 전투기와 무인기를 연결하는 제반 기술까지 모두 돈을 주고 사들여야 하는 사태에 직면할 수 있다.
각종 무기체계의 운영 유지비가 갈수록 비싸지는 점도 고려 사항이다. 미국 등 군사대국들은 무기를 판매할 때는 비교적 저렴하게 내준 뒤 향후 수리나 최신화 과정에서 거액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군 관계자는 "무기체계 플랫폼을 저렴하게 공급한 뒤 운영유지비,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비, 엔진 수명 유지 비용 등을 올려 받는 게 전반적인 추세"라며 "한국형 전투기 개발비가 많이 들더라도 30~40년을 운영한다고 하면 직접 개발하는 게 더 이익"이라고 설명했다.
우리나라의 전투기 제작 기술 수준이 수십년간 축적된 점 역시 기대할 만한 대목이다. 우리나라는 1970년대 후반 제공호(F-5E/F) 조립생산, 80년대 KF-16 면허생산을 통해 생산기술을 확보했다. 1990년대 들어서는 KT-1 기본훈련기와 KA-1 공중통제기를 국내 독자 개발했다. 2006년에는 한국항공우주산업이 미 록히드마틴과 합작해 T-50 고등훈련기에 이어 TA-50, FA-50 등을 개발했다. 축적된 기술은 한국형 전투기 개발에 반영되고 있다.
한국형 전투기 사업으로 인한 경제적 파급 효과도 기대된다. 2012년 국방과학연구소(ADD)가 내놓은 탐색개발 결과에 따르면 한국형 전투기 사업의 산업파급 효과는 최소 19조원에서 최대 23조원, 기술파급효과는 40조7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됐다.
이처럼 시위를 떠난 화살이 된 한국형 전투기 사업은 이제 과녁을 향해 날아가고 있다. 지금으로선 새 전투기가 기대치를 충족하는 성능을 구현해 각종 비판과 우려를 불식시키길 기다릴 수밖에 없어 보인다.
- 박대로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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