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방산, 앞으로 3~5년이 유럽시장 기회의 창”
- 작성일2025/04/09 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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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4.09. [중앙일보]
한국의 방위산업 수출 규모는 2022년 173억 달러를 기록한 뒤 2023년(135억 달러)과 지난해(95억 달러)는 다소 주춤한 상태다. 하지만 세계 방산 수출국 9위에 자리 잡은 K방산의 경쟁력은 여전하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위기감 고조와 트럼프 행정부의 안보 책임론으로, 유럽연합(EU)은 지난달 2030년까지 8000억 유로(약 1270조원)를 투입하는 ‘유럽 재무장 계획’을 발표했다. 이미 동유럽과 북유럽 시장 진출에 성공한 K방산으로선 한 단계 더 도약하기 위해 놓쳐선 안 될 기회의 창이 열린 것이다. 역대 최대 규모의 방산 수출을 견인했던 강은호 전 방위사업청장(전북대 방위산업연구소장)에게 대응 방안을 들어봤다.
EU, 1270조 재무장 계획 발표
Q. EU가 재무장 계획을 발표했다. 다만 ‘바이 유러피안’(Buy European·유럽산 구매) 방침에 따라 K방산의 접근이 쉽지 않을 수 있다는 전망도 있는데.
A. “유럽 국가들이 러시아의 안보 위협을 느끼는 정도에 차이가 크다. 유럽 방산 선진국인 독일과 프랑스만 해도 생산 라인을 다시 깔고 자국의 수요를 맞추는 데만도 최소 3년에서 5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한다. 과연 마음이 급한 동유럽과 북유럽 국가들이 기다릴 수 있을까. 이 틈을 파고들어야 한다. 지난해 노르웨이가 한국의 K2전차 대신 독일의 레오파르트 전차를 도입키로 했는데 전차를 인도받는 데 최소 수년이 걸린다. 우리는 폴란드에 K2전차를 불과 십수 개월 만에 납품했다.”
이와 관련, 덴마크의 메테 프레데릭센 총리는 최근 기자회견에서 “국방부 장관에게 전한 메시지는 단 하나다. ‘(무기를) 사고, 사고, 또 사라’였다”며 “최상의 무기를 구매할 수 없다면 차선책을 사고, 우리가 원하는 무기 구매가 너무 오래 걸리면 더 신속히 인도될 수 있는 다른 걸 선택해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Q. 향후 3~5년이 기회란 의미인가.
A. “맞다. 미국에 안보를 의존해온 유럽 국가들이 다시 생산 라인을 본격적으로 가동하기 전까지가 우리에겐 기회다. 방산은 기본적으로 정부 대 정부(G2G) 사업이다. 정부가 총력 지원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짧게는 3년, 길게는 5년 뒤에는 기회의 창이 닫힐 수 있다. 만약 우리가 수주에 성공하면 유지·보수와 후속 군수 지원 등을 통해 향후 20~30년이 보장되는 게 방산의 특징이다. 잘하면 한국이 3대 방산 수출국(G3)의 대열에도 들어갈 수 있다.”
현지 생산하면 무기 구매 쉽게 못 바꿔
Q. 기회를 놓치면 오히려 침체가 올 수도 있겠다.
A. “무기 체계는 끊임없이 성능 개량을 해야 한다. 특히 인공지능(AI) 시대를 맞아 기존 무기 체계에 AI 탑재는 필수다. 여기에 들어갈 막대한 투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지금 우리 무기 체계를 판매해 벌어들인 수익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 정부도 방산 연구·개발(R&D) 예산을 원래 수준으로 빨리 회복시켜 미래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Q. 기회를 잡으려면 무엇을 해야 하나.
A. “청장 시절 상대국에 현지 생산을 선제적으로 제안했고 그 부분을 세일즈 포인트로 삼았다. 50년 K방산의 경험과 노하우를 공유하겠다고 어필했다. ‘방산 수출’이 아니라 ‘방산 협력’이라고 강조했다. 일각에서 현지 생산하면 우리 기술이 넘어간다고 비판하는데 핵심 기술 20%만 통제하면 된다. 현지 생산하면 구매국 입장에선 기술 이전과 고용 창출, 안정적인 공급이 가능하다. 우리 입장에서도 장점이 많다. 국내 생산라인 증설에 따른 과잉·중복 투자 위험을 줄일 수 있다. ‘경로 의존성’이란 말이 있다. 우리 무기 체계의 생산 라인까지 갖춘 국가가 다른 나라 무기 구매로 전환하기는 쉽지 않다. 한국과는 다른 기후 환경, 구매국 군인의 실제 운용 패턴 등에 맞춰 정부와 기업, 운용 노하우를 가진 군이 원팀으로 후속 지원을 철저히 해주겠다고 약속해야 한다.”
싱크탱크 스톡홀름 국제평화연구소(SIPRI)에 따르면 2020∼24년 유럽 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들이 수입한 무기의 64%가 미국산으로 집계됐다. 이어 프랑스와 한국이 6.5%, 독일 4.7%, 이스라엘이 3.9% 순이었다.
Q. 유럽 내에서 미국 무기 의존도를 낮춰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데.
A. “미국과 한국 무기 체계가 커버하는 영역이 다르다. 미국은 고가의 최첨단 무기 체계에 집중하고 있지만, 한국은 성능과 가격 경쟁력에서 강점이 있다. 예를 들어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게임 체인저’로 떠오른 미국의 고속기동포병로켓시스템(HIMARS)과 우리의 다연장로켓 천무는 영역이 겹치는데, 천무의 가격이 절반도 안 된다. 트럼프 행정부가 유럽에 미국산 무기 구매를 압박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지만, K방산의 유럽 내 점유율을 높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미국, 한국 MRO 능력에 호평
Q. 미국이 함정 유지·보수·정비(MRO) 협력을 요청하고 있는데.
A. “미국은 중국과의 패권 경쟁에서 가장 중요한 해군 역량을 구축할 수 있는 조선업 기반이 취약하다. 도크시설과 전문 기능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반면 중국은 세계 조선 1~2위를 다투는 상황이다. 중국 함정은 대부분 최근 10년 이내에 만들었지만 인도·태평양사령부 소속 미국 함정은 대부분 건조한 지 20년을 훌쩍 넘겼다. 한화오션이 최근 국내 최초로 수주했던 미 해군 군수지원함 월리 쉬라호 MRO 사업을 마무리했는데 미측에서 호평이 쏟아졌다. 미국 함정에 익숙한 한국 조선사들은 당장의 문제만이 아니라 곧 발생할 문제까지 찾아내는 기술 역량과 신속한 해결 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점이 입증됐다.”
차세현 논설위원